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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mly

검색결과 : 문화/역사 (5)

  1. 세령은 실존 인물일까? - 2011.08.29


KBS에서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가 방영한다.
이 드라마는 세조의 첫째딸과 김종서의 막내아들의 사랑 이야기로 야사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드라마의 모티브로 삼았다.

금계필담이라는 야사에 의하면 세조의 딸과 김종서의 손자 이야기인데, 야사는 정사가 아니기 때문에 장담 할수는 없다.
야사와 정사 두 가지를 봤을때, 세조의 딸은 의숙공주만 있는데 의숙공주는 정현조에게 출가하였으니, 세조에겐 두 명의 딸이 있다는 얘기이다.

그럼 세조에겐 두 딸이 있었을까?

세조의 가계도에는 세조의 소생이 4남 1녀로 기록되어 있다.
정희왕후 윤씨에게서 의경세자 덕종, 해양대군 예종, 의숙공주를 보았고 근빈 박씨에게서 덕원군, 창원군을 보았다는 얘기다.
즉, 의숙공주만 기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세조에겐 두 명의 딸이 있었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의 일부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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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12권, 28년(1446 병인 / 명 정통(正統) 11년) 6월 6일(임인) 2번째기사
예조 판서 정인지가 영릉 지문을 지어 바치다


[국역] .... {중략} .... 수양(首陽)은 중추원 사(中樞院使) 윤번(尹璠)의 딸에게 장가들어 1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숭(崇)이니 도원군(桃源君)을 봉하고, 딸은 모두 어리다.
[원문] .... {중략} .... 首陽娶中樞院使尹璠之女, 生一男二女。 男曰崇、封桃原君〔桃源君〕, 女皆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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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헌왕후(세종 왕비) 영릉 지문에 의하면 수양대군, 즉 세조가 당시 1446년에는 1남 2녀를 낳은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여기에서 년도별로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428년 - 윤씨와 혼인
1438년 - 의경세자(덕종) 탄생
1441년 - 의숙공주 탄생
1445년 - 의경세자를 도원군에 봉함
1446년 - 소헌왕후 승하

실록의 내용을 보면 1446년 소헌왕후가 승하할 당시에 의경세자의 나이는 9살, 의숙공주는 6살이였다.
1남 2녀를 낳았다고 했는데, 1남은 의경세자가 되고, 2녀중 한명은 의숙공주인 것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또 다른 1녀에 대한 세가지의 가능성을 유추하였다.
1428년에서 1438년 10년 사이에 딸 하나를 낳았을 가능성,
1439년에서 1440년 2년 사이에 딸 하나를 낳았을 가능성,
1441년에서 1446년 5년 사이에 딸 하나를 낳았을 가능성,

저 세가지의 가능성은 공통적으로 일찍 죽었거나,

일찍 죽지 않았으면 금계필담에 전해지는 딸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장녀이면 첫번째와 두번째 가능성이 크고, 차녀이면 세번째 가능성이다.
(필자의 개인적 생각으로는 첫번째 가능성이 높은데, 세조가 윤씨와 결혼하고 10년 동안 자식이 없지는 않았을 듯하다.)

정리하면, 결론은 세조에겐 두 명의 딸이 있었다.

1차 사료인 조선왕조실록에 수양대군이 1남 2녀를 낳았다 기록한 것이 확실한 증거이다.

하지만, 세조실록과 가계도에는 의숙공주만이 기록되어 있어, 한 딸은 일찍 죽었거나 금계필담에 전해지는 딸일 것이고, 장녀인지 차녀인지는 알 수가 없다.
호칭에 대해서도 세령(또는 세희, 의화)공주(정확하게는 공주의 작호를 받은 적은 없다)라 하지만 이 역시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세조의 딸이기 때문에 공주라고 하는 것 같다.
금계필담이 아무리 야사라고 해도, 실제 있었던 일이 전해져 와서 야사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야사는 정사가 아니기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릴수는 없다.

본 글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가 많이 담겨 있어, 타인과의 생각이 많이 다를 수 있다.
본 글을 쓴 이유도 단지 세조에겐 두 딸이 있었다라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한 것이다.

[출처] 세조(수양대군)에겐 두 명의 딸이 있었다.|작성자 송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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