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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u Park 2012. 4. 2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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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3년 자이언츠에 입단해, 1984년에는 프로 야구사에 길이 남을 대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투수.


1984년 시즌, 51경기에 출전해 14차례 완투, 27승 13패 6세이브 탈삼진 223개, 평균 자책점 2.40.


한국 프로 야구 최우수 선수상와 다승왕, 탈삼진왕을 석권.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 1패(1차전 완봉승/3차전 완투승/5차전 완투패/6차전 구원승/7차전 완투승)을 따내 팀의 첫 우승을 안겨준 투수.


역대 한국 시리즈에서 한 선수가 4승을 모두 거둔 유일한 투수.


1988년, 본인은 이미 최고의 대우를 받는 영웅이었지만, 그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선수들을 위해 선수협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같이 운동을 하던 선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도울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연습생 선수들의 최저 생계비나 선수들의 경조사비, 연금 같은 최소한의 복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선수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명예욕에 따른 움직임이라는 일부의 편견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았다.


“나는 1억 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였다. 그 돈이면 당시 강남에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내 욕심을 위해서라면 선수협을 결성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어려운 동료들을 돕고 싶었을 뿐”


소속팀은 그 팀에게 첫 우승을 일궈준 영웅을 보복성 트레이드로 쫓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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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0년 4월 18일, LG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

2루 주자였던 한 선수가 쓰러진다. 원인은 심장 부정맥으로 인한 발작.

응급상황에 대한 대처가 없었던 선수는 뒤늦게 병원으로 후송된다.


그리고 다시는 경기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넥센 히어로즈는 2008년 부터 진행해온 임수혁 후원 행사를 지속해 그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해주고 임수혁의 추모식을 마련했다.


그 경기에서 임수혁의 아버지가 시구를, 임수혁 후원회장이 시타로 나섰다.

임수혁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전 야구선수 이상훈은 록가수로 전향한 점을 되살려 그의 밴드 멤버들과 임수혁 추모 콘서트를 열었다.


그런데 잠깐. 임수혁이 넥센 히어로즈(前 현대 유니콘스)의 선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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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10년, 한 타자가 대한민국 야구 역사를 다시 썼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세계 야구 역사를 다시 썼다.

9경기 연속 홈런에 이어, 전무후무할 기록인 '타격 7관왕'을 차지.


그는 유명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타자 : 타격 7관왕을 했지만 팀이 우승을 하지 못해 하나도 기쁘지 않다

강호동 : 그럼 다음 시즌 끝나면 FA인데 우승 시킬때까지 롯데에 남을 것인가?


FA를 한 시즌 밖에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대답하기 곤란한 짖궂은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이다. 롯데를 우승시키는 것이 내 꿈이다."


그 해, 자이언츠의 연봉협상은 오래 걸렸다. 리그 타자 최고대우인 7억원을 원하는 이대호와, 6억 3천만원 이상은 줄 수 없다는 자이언츠.

결국 이 문제는 연봉조정신청까지 가게 된다. KBO는 제 9구단 창단을 반대하는 롯데를 달래주기 위해 롯데의 편을 들어준다.


"제가 졌기 때문에 모든 후배들은 이제 연봉조정 신청이란 부분은 버려야 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어요, 구단 위해서 만들어 놓은 KBO기 때문에..."


바로 그 시즌에서 사상 최초의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 등 야구의 역사를 다시 쓰고도 이대호의 연봉조정은 결국 패배로 끝났다.


결국, '조선의 4번 타자'는 2011 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으로 바다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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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었던, 보복성 트레이드로 쫓겨났던 그 투수가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런데 빈소를 지키는 건 그가 우승시킨 팀이 아닌, 한화 이글스.


곧 자이언츠 팬들의 프런트를 비판하는 글이 들끓자, 뒤늦게 자이언츠는 그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한다.


그 이전까지의 영구결번은 기아(당시 해태)의 선동열, 두산(당시 OB)의 박철순, 한화의 송진우, 장종훈, 정민철, LG의 김용수, 두산(당시 OB)의 김영신, 삼성의 이만수와 양준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자이언츠는 영구결번을 지정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몇십 년 전의 일에 대한 앙금일까?


자이언츠의 팬은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그들은 모두 선수들의 플레이를 사랑하는 팬들이다. 프런트를 믿는 팬들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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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창원에 9번째 구단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저 경남의 야구 인기에 편승해서, 어떻게 홍보좀 해보면서 야구 인기에 끼어볼까 하는 수준으로만 보였다. 그런 와중에, 마산 구장의 리모델링 이후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됐다.


그들은 달랐다.


창원 팬들은 지금까지 자이언츠에게 받아왔던 서러움이 한 번에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제 2의 연고지로서 1년에 6번밖에 편성이 되지 않았던 마산구장 경기 일정. 그나마도 비로 인해 우천 취소가 되면 야구를 볼 몇 안되는 기회를 놓쳤다는 상실감에 술을 마시는 팬들이 대다수였다.



2012년 4월 14일, 퓨쳐스리그 마산구장 홈 개막전. 퓨쳐스리그에서 1년을 보내야 하는 다이노스 홈구장에는 1만 명에 육박하는 관중이 몰렸다.


게다가 상대는 다름아닌 자이언츠.


자이언츠는 2군이긴 하지만 손용석, 박준서, 양종민, 정보명 등 1.3군에 가까운 선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막 프로로의 첫 발을 내딛은 선수들에게는 분명 버거운 상대.


기우였다.


다이노스는 자이언츠를 상대로 3전 전승을 거두며 팬들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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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쉽게 마음이 떠나지는 못할 걸 알고 있다. 그래도 한 번, 응원하는 팀을 바꿔보려고 한다.

팬들을 존중하면서도 야구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이노스가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이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대한민국의 9번째 심장'이 우리 모두의 심장을 뛰게 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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