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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은 정당한가?

문화/역사

by Chanu Park 2011. 8. 2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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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KBS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공주의남자>에 푹 빠져 있다. 이 드라마에서는 수양대군의 권력에 대한 야욕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통해 드라마에서는 '충신'으로 표현하고 있는 우의정 김종서를 비롯하여 영의정 황보인, 병조판서 조극관, 이조판서 민신 등 자신의 반대파를 모두 숙청한다. 이를 통해 수양은 의정부와 6조에 자신의 사람들을 내정하고 자신은 영의정이 되어 단종을 압박한다.

드라마의 시각은 김종서의 막내 아들인 김승유와 수양대군의 장녀인 세령과의 러브스토리에 맞춰져 있고, 세조의 왕위 찬탈 후 서인으로 강등되는 경혜공주와 그 주변인물들에게도 많은 표현을 할애하고 있다.

일단 여기서는 세조의 왕위 찬탈의 정당성에 대해 논해보도록 하자.


예전 <왕과 비>라는 대하드라마에서는 수양대군을 권력에 대한 야욕이 없으나, 주변 사람들의 권유에 못 이겨 왕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정난을 일으키는 '영웅'으로 묘사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어린 왕 때문에 신하들의 권위가 왕권보다 강해져 '어쩔 수 없이' 계유정난을 통해 정승들을 제거했다는 <왕과 비>의 역사 해석은 옳은 것일까?

<왕과 비>에서는 세종의 아들 중 가장 왕의 재목으로 평가받은 인물은 수양대군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수렴청정을 이끈 치세의 주역인 문종과 아버지의 학문적인 재능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평가하는 셋째아들 안평대군이 지금으로 따지면 '조직폭력배'와 다름 없는 무리와 어울려다닌 수양대군보다 더 왕으로서의 자질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왕이 어렸기 때문에 왕의 자질이 없었다고 한다면, 후에 왕이 되는 성종의 치세는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세조가 북방의 오랑캐들을 정벌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세조는 남이 장군을 통해 북방의 안정을 도모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종서를 비롯해 후에 반란을 일으키는 이징옥과 이시애의 죽음은 백성들을 오랑캐의 위협으로 몰아넣는 계기를 제공했다.

세조의 치세라고 평가받는 직전법의 경우, 세조가 공신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기 위한 제도였으며 호패법 또한 이시애의 난 등으로 어지러워진 백성들을 중앙집권적인 체계로 관리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세조가 불교에 심취한 것도 유교적인 사상으로는 도저히 왕위 찬탈이 용납될 수 없었고, 유교 사상을 중요시 여기는 명으로부터 왕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더라도 세조의 왕위 찬탈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정당성은 일제강점기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던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군부 독재자들로부터 시작됐다. 세조가 왕위 찬탈 후 왕권을 강화하긴 했으나 이시애의 난 등 반란을 유발했고 이를 진압한 공신들의 권력은 강해졌으며 이는 훈구파와 사림파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갑자사화 등의 사건을 유발한다.

이시애의 난과 갑자사화로부터 쿠데타 정권은 또 다른 피를 불러온다는 역사의 순환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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