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가 북방의 오랑캐들을 정벌했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세조는 남이 장군을 통해 북방의 안정을 도모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종서를 비롯해 후에 반란을 일으키는 이징옥과 이시애의 죽음은 백성들을 오랑캐의 위협으로 몰아넣는 계기를 제공했다.
세조의 치세라고 평가받는 직전법의 경우, 세조가 공신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기 위한 제도였으며 호패법 또한 이시애의 난 등으로 어지러워진 백성들을 중앙집권적인 체계로 관리하기 위해 시행한 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세조가 불교에 심취한 것도 유교적인 사상으로는 도저히 왕위 찬탈이 용납될 수 없었고, 유교 사상을 중요시 여기는 명으로부터 왕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더라도 세조의 왕위 찬탈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대한 정당성은 일제강점기와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던 박정희, 전두환과 같은 군부 독재자들로부터 시작됐다. 세조가 왕위 찬탈 후 왕권을 강화하긴 했으나 이시애의 난 등 반란을 유발했고 이를 진압한 공신들의 권력은 강해졌으며 이는 훈구파와 사림파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갑자사화 등의 사건을 유발한다.
이시애의 난과 갑자사화로부터 쿠데타 정권은 또 다른 피를 불러온다는 역사의 순환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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