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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내글/잡담

by Chanu Park 2013. 6. 4.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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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가 만난 사람들
1979년 어느 날, 호르스트 바커바르트는 버려진 붉은 소파와 카메라를 싣고 여행을 시작한다. 이 책은 30년 동안이나 계속된 그의 여행에서, 그가 만난 2만 5천여 명의 이야기를 간추려 엮은 인터뷰 집으로,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가?’ 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사람들의 답변과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제목인 붉은 소파는 인터뷰를 하기 위한 공간이자 종교와 인종, 계층과 문화를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로서 작용한다. 붉은 소파위에서 사람들은 평등해지고, 자신만의 진솔한 이야기로 인터뷰에 응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을 유쾌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조언을 해주려다 궁금증에 나도 덩달아 '붉은 소파'라는 사진집을 감상하게 됐다.


저자는 여러 사람들을 같은 사물인 '붉은 소파'에 앉힘으로써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같은 시각으로 대상을 바라본다는 '평등'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 같다. 어린이, 부랑자, 화가, 예술가, 금융가, 사업가, 실업자, 걸인, 러시아의 전 대통령인 고르바초프까지. 저자는 다양한 사람들을 이 소파에 앉혔다.





먼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하필 '붉은색'의 소파일까.


저자가 그저 이 사진들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같은 시각을 이야기하려고 했다면, 그 목적이 그저 평등이었다면 소파의 색은 어떤 색이라도 크게 의미를 갖진 않았을 것이다. 붉은색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붉은색은 흔히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의 이상 국가를 건립하기 위한 혁명을 외칠 때 사용했던 색이다. 혹자는 붉은색에 순교와 희생, 열정과 사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이들 모두 눈에 띄지 않는 가치지만 그것을 상징하는 빨간색은 그 어떤 색보다도 눈에 잘 띄는 색이다. 즉, 붉은색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눈에 가장 잘 띄는 색으로 표현하여 그것의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상징한다. 이렇게 저자는 '붉은색'이 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가치와 '소파'가 상징하는 같은 시각을 통해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그 붉은 소파에 앉았던 모델들의 시각은 어땠을까. 과연 그 모델들 모두 저자가 의도한 대로 그를 같은 시선으로 보았을까?


저자는 오랜 세월, 붉은 소파와 함께한 여행을 통해 책을 내며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은 처음 그런 여행을 떠난 그를 고운 시선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당장 나도 누군가 자신의 집에 있는 소파를 챙겨서 여행을 떠나겠노라 이야기한다면 나부터 친구들에게 '미친놈'이라며 그를 비웃었을테니.


그의 사진의 모델들조차 그를 대할 때 순수한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저자를 '저자의 의도대로' 평등하게 바라봤을까? 어떤 모델은 저자의 작품성과 의도를 이해하고 사진을 찍었을 것이고 또 어떤 모델은 '여기까지 이런걸 가지고 와서 뭐하는 거람'이라며 비아냥 거렸을 것 같다. '이상'에 젖어 '현실'을 망각한게 아니냐며.


내 시선이 저자의 좋은 의도를 비하하려고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당장 이 글을 읽는 당신은 누군가 다른 나라에서 소파를 들고 와 사진을 찍겠다고 하는 사람을 보고 존경심과 경외심부터 들 자신이 있는가.

 

저자 자신 또한 이런 주변의 냉소적인 태도를 느끼지 못했을까? 이런 상황이 반복 될수록 저자는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붉은 소파에 앉는 사람들이 같은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저자가 처음 사진집을 내고 자신이 유명해짐에 따라 바뀌는 사람들의 호의적인 태도에서 조차도 그는 결국 평등을 이야기하려던 의도가 변질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럼 저자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붉은 소파는 '이상'이었다는 걸 깨닫지 않았겠는가.


결국 '같은 시선'을 보여주고자 했던 이 붉은 소파는 실패한 이상에 불과해진다. 이제 더 이상 거기에 앉은 사람들은 대상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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